과 비슷하다. 살아있을 때는 잠을 통하여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충전하여 쓰다가, 죽음을 통하여 모든 부족한 영적인 에너지를 완전하게 보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죽음은 휴식이며 고갈된 에너지의 보충인 것이다.
죽음은 절대적 평등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란 말이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죽는다’는 말이다. 이 말 한 마디가 죽음이 절대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또 죽음은 누구도 어디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에는 남녀· 노소도 없고 거지나 왕의 구별도 없으며, 죽음은 그 어느 곳에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이 또한 절대적 평등이 되는 것이다. 다만 죽음이 평등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떤 이는 조금 일찍 죽고 어떤 이는 조금 늦게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법칙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절대적 평등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모든 두려움의 근원이며, 두려움은 활력을 가져온다
모든 공포나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이다. 두려움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맨 끝에서 죽음을 만나기 때문이다. 또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모든 생물체가 죽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려움이 삶의 의지를 촉진시키고 사회 곳곳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이다. 두려움이 일정한 긴장감을 조성하여 우리 마음의 해이(解弛)를 막아 주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청어를 예로 들어보자. 청어를 싱싱한 상태로 멀리 수송하기 위해서는, 청어가 들어있는 수조에 큰 숭어 몇 마리를 넣어 준다고 한다. 천적과 같은 숭어를 만난 청어는 살아남기 위해 긴장하게 되고, 이 긴장감이 정신적 해이를 막고 계속 몸을 움직이게 만들어 청어가 싱싱하게 살아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청어가 있는 수조에 숭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청어는 그만큼 정신적인 긴장감이 없어지고 해이해져서 그 활동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죽는 청어가 생기고, 살아있는 청어도 싱싱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일 죽음이 없다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두려움이 없으면 긴장감이 없어지며, 긴장감이 없으면 나태해지고 활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또 죽음이 없다면 모든 생물들은 먹지 않아도 죽지 않을 것이니, 살기위해 땀 흘려 노력할 필요가 없고, 이는 곧 나태와 무기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 있어야 두려움이 생기고, 두려움은 노력과 활력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죽음은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고 기강을 확립한다
우주에는 일정한 질서와 기강(紀綱)이 있는데, 모든 생물들은 이질서에 반(反)하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경각심과 긴장감을 조성하고, 이것이 질서유지와 기강을 확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죽음이 없다면 모든 생물들의 두려움이 없어지고, 두려움이 없는 세상에서는 살아있는 개체 하나 하나가 모두 왕이다. 그러니 긴장감이나 조심성이 있을 리 없고, 거침없는 일방통행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강자나 약자 또는 상· 하의 구분이 없어지고,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도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우주의 질서와 기강이 무너지게 되고, 질서와 기강이 무너지고 나면 그야말로 ‘개판’ 또는 ‘난장판’의 연속일 것이다.
죽음은 모든 생물들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모든 생물들의 궁극적 삶의 의미는 깨달음이다. 이것은 하늘이 모든 생물들에게 내려준 공통된 사명(使命)이다. 따라서 모든 생물들은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광물은 식물을 향해 나아가고, 식물은 동물을 향해 나아가며, 동물은 인간을 향해 나아가고, 인간은 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나아감을 ‘진보(進步)’ 또는 ‘발전(發展)’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에서 말하는 ‘정진(精進)’이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이 나아가는 과정 하나하나에는 모두 죽음이 동반된다. 이런 반복된 죽음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이 없다면 깨달음이 없고, 깨달음이 없다면 삶의 의미도 없어지는 것이다.
죽음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부여한다
인간의 가치는 개체수와 인간성에 있다. 적당한 개체수와 인간성이 유지될 때 인간의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죽음이 없다면 인간의 개체 수는 계속 늘어나지만, 그 가치는 마치 버려진 쓰레기나 발길에 차이는 돌처럼 되고 말 것이다. 또 사람의 인간성은 아쉬운 마음, 아끼는 마음,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죽음이 없다면, 이러한 인간성이 사라지면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품위는 법과 질서, 도덕과 예의를 지키는 가운데서 생겨난다. 그런데 만일 죽음이 없다면, 이런 것들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고 인간의 존엄과 품위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밖에도 죽음은,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과정” “반성· 수행· 깨달음의 기회” “개체가 전체로 회귀해 가는 과정” “진리가 제시되는 순간” “우리가 마지막으로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시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죽음은 그저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없는 사회, 그곳은 삶이 없는 사회인 것이다. 인간의 가치가 없고, 인간에 대한 존엄이 없으며, 겸손 등의 사회적 미덕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게으르고 활력이 없으며 삶의 의미가 상실되어 완전히 막가는 사회, 황폐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죽음이 얼마나 중요